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2023년 기준 서울교통공사의 당기순손실은 6,947억 원에 달하며, 누적 부채는 17조 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적자 구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노인 무임승차제’다. 2023년 한 해 동안 무임승차로 발생한 손실액만 4,135억 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노인 무임승차제는 1984년 전두환 정부 시절 도입된 제도로,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서울 지하철과 일부 도시철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당시에는 평균 기대수명이 66.7세로, 무임승차 대상자가 많지 않았으나, 현재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83.5세에 달하며 고령층 인구가 급증하면서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현재 노인 대중교통 혜택을 운영하는 해외 주요 도시들은 연령 기준을 높이거나, 무료 혜택 대신 할인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경우 무임승차 연령 기준이 70세 이상이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노인 요금을 할인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도 연령 기준을 단계적으로 70세 이상으로 조정하거나, 할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의회 토론회, 노인 무임승차제 개편 논의 본격화
서울특별시의회 교통위원회(위원장 이병윤, 국민의힘, 동대문구1)는 지난 3월 5일 ‘서울특별시 도시철도 노인무임승차 현황 및 개선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대한노인회 관계자, 학계 전문가, 언론인 및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노인 무임승차제의 현황과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윤영희 서울시의회 의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64.1%가 노인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76.1%는 적정 연령을 70세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76.6%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운영 적자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하는 등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노인 이동권 보장 vs. 지하철 운영 부담
한국리서치가 지난 1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노인 무임승차제 개선 필요성이 확인됐다. 응답자의 72%는 노인의 이동권 보장 차원에서 무임승차 혜택이 필요하다고 보았지만, 68%는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무임승차 연령 상향(68%) ▲출퇴근 시간 제외(65%) ▲할인제로 변경(62%) 등의 개혁 방안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강갑생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는 “노인 무임승차제는 운영 적자 문제뿐만 아니라 노인의 이동권 보장과 세대 간 형평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임세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사무처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무임승차 제도를 복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도,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 등과 연계한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재정 지원 팔 걷어야
서울교통공사 역시 무임승차제 운영 부담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은기 서울교통공사 경영지원실장은 “2024년 기준 하루 무임수송 승객이 756만 명으로 전체 이용객의 17.2%를 차지한다”며, “현재 수준의 무임승차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주선 서울시 교통실 도시철도과장은 “노인 무임승차제는 국가적인 정책이므로 서울시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과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인 무임승차제 개편과 관련하여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현재 65세에서 70세로 점진적 상향하고, 초고령사회에 맞춰 기준을 조정해 사회적 부담 완화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 무임승차 제한하고, 전액 무료 대신 50% 할인 적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와함께 최소한 기본요금(1,400원)의 절반을 부담하도록 조정하고 다른도시와 같이 정부가 적자 보전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함께 기본요금을 1,600~1,800원 수준으로 인상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수익 모델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서울시가 매년 서울교통공사에 2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는 있지만, 지하철 광고, 부동산 개발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적극 활용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 서울지하철 역사 내 광고 수익 감소하고 있다. 뉴욕·런던처럼 디지털 광고 시스템을 도입하고, 역내 유휴 공간을 활용한 임대사업을 확대와, 서울 지하철 주요 역사를 복합 상업시설과 연계한 개발 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일본 도쿄의 JR 동일본이 운영하는 ‘에키나카’(역사 내 쇼핑몰) 모델을 참고해 역세권 개발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운영 외에도 민간 철도 사업과 협력해 물류·운송 사업 확대 등도 검토해볼만한 일이다. 서울 지하철은 연간 27억 명이 이용하는 대한민국 대중교통의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40년 전 도입된 노인 무임승차제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지속 가능한 대중교통 운영을 위해 노인 무임승차제의 개편 방향을 논의해야 하며, 무임승차로 발생하는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지원 확대와 요금 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단순한 운임 인상이 아니라, 노인 이동권 보장과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시민, 서울시, 정부, 국회가 함께 논의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