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우리 헌정사에 또 한 번 깊은 흔적을 남겼다.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 정국은 이후 수개월 간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법의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까지, 찬반을 둘러싼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서울의 중심부는 시시각각 바뀌는 여론의 물결 속에서 끓어올랐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 일대는 매일같이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시청역과 광화문역, 안국역, 여의도역 등 주요 지하철역은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한민국 시민들은 놀라운 시민의식으로 또 한 번 우리 민주주의의 역량을 증명했다. 격렬한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어갔고, 큰 충돌 없이 집회는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질서의 유지’는 결코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뛰어다닌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서울교통공사의 묵묵한 헌신이 있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삼일절인 3월 1일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일인 4월 4일까지, 최고 수준의 안전 대책을 가동했다. 평시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이용객이 지하철 역사를 찾았고, 특히 3호선 안국역과 6호선 한강진역 등은 집회 장소와 가까워 인파가 폭증했다. 실제로 안국역은 지난 3월 8일 하루 동안 8만 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해, 전주 대비 103%, 전년 대비 170%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공사는 주요 역사 15곳에 무려 350명의 안전 인력을 투입하고, 92명의 예비 인력을 추가 대기시켰다. 열차 무정차 통과, 역사 출입구 폐쇄, 환기구 펜스 설치 등 강도 높은 물리적 조치도 함께 병행되었다. 안국역은 헌재 선고일 당일 첫차부터 전면 폐쇄되었고, 인접한 종로3가역과 종각역은 혼잡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출입구가 차단되거나 안내 인력이 추가 배치되었다. 이 외에도 혼잡 상황에 따라 2‧3‧5‧6호선에 비상열차를 증편 운영해 열차 간격을 줄이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가동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단지 ‘업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공공의 안전’을 위한 책임과 사명의식이었으며, 민주주의의 장이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현장’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결단이었다. 지하철 역사 내부의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계단 등 모든 시설물에 대한 사전 점검은 물론, 비상 방송과 안내문, SNS, 앱(또타지하철) 등을 활용한 상황 공유도 이뤄졌다. “이용에 불편이 있더라도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공사의 방침은 위기 속에서 진정한 공공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공사 내부의 컨트롤타워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헌재 선고일을 앞두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안국역과 광화문역, 한강진역 등을 점검했고, 실무 부서들과의 연쇄 회의를 통해 철저한 매뉴얼을 마련했다. 현장지휘소 운영, 경찰과의 협조 체계 구축, 출입구 통제 권한 공유 등 모든 조치는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고, 시민들의 큰 불편 없이 안전한 교통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서울교통공사의 대응은 ‘예방적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수많은 시민이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도 지하철이라는 생명선을 이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사의 끊임없는 시뮬레이션과 대응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공공기관에 대해 ‘비효율’이나 ‘관료적’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갖곤 한다. 그러나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대응은 그런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례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민간 기업 못지않은 기동력과 책임감, 공공성을 발휘하며 시민의 일상과 안전을 지켜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의 역할이 아닐까.
광장이 뜨겁게 타올랐던 그 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힘을 또 한 번 확인했다. 시민들은 스스로의 질서로 민주주의를 지켰고, 공공기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안전을 지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우리는 이 모든 시간의 이면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서울교통공사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의 헌신은 단지 철도의 안전을 지킨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함께 지켜낸 일이었다.
이원희 대기자